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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우순영] 너에게 흔들리고 있어 6





w. 소라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데이터를 확인하던 순영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인다. 뻐근한 어깨와 목 뒤를 꾹 꾹 누르다 다시 마우스를 쥐고, 스크롤을 조금 내린 손이 다시금 어깨로 향했다. 선분홍빛의 손 끝이 하얗게 변할만큼 힘을 줘 누르는데도 통증은 가라앉을 기미가 안보였다.





점심을 먹기 전 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던 부위는 아픔을 인지하자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되었다. 끄응. 살짝 벌어진 입술사이로 앓는소리가 엷게 흘러나온다. 스트레칭 하듯 목을 길게 좌우로 늘려도 봤지만 통증이 덜어지는건 그 때 뿐이었다. 아까부터 똑같은 화면만 띄워놓은 채 멍하니 바라보다 욱신거리는 통증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무래도 파스를 사러 다녀와야 할 것 같았다. 







편의점에서 파스를 사온 순영은 화장실로 들어섰다. 세면대 앞 거울에 잘 보이지 않는 뒷목을 비춰보며 어느 부분에 붙여야할지를 가늠했다. 손가락으로 목 뒤를 짚어가며 아픈 부위를 찾다가 뒷면의 종이를 뜯어서 대강 붙였다. 보이지 않는 부위에 혼자 붙이는건 퍽 어려운 일이라, 순영의 목 뒤에 파스가 쪼글쪼글하게 붙어있었다. 보다 완벽한 접착을 위해 슥슥 쓸어내리는 손에 닿는 느낌이 제가 생각하기에더 어설프게 붙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탓인지는 몰라도 파스를 붙이고 난 후 확실히 통증이 덜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쌓여있는 서류를 정리하다보니 어느새 퇴근시간이 지나있었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오늘은 바로 퇴근할 참이었다. 책상을 대강 정리하고 가방을 챙긴 순영은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피씨를 종료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순영은 팀원들의 인사를 뒤로 한 채 걸음을 옮겼다. 




사무실을 나서자 저보다 조금 일찍 나온 원우가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대리님도 지금 퇴근하세요?”

“네. 권대리님도요?”

“네. 딱히 급한 일도 없고 해서 일찍 들어가려고요.”




순영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친 원우에게 반갑다는 듯 말을 걸었다. 짧은 대화를 나누고 정면을 바라보자 꽤 고층까지 올라간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멍한 눈으로 사무실이 있는 층에 가까워지는 숫자를 바라보다 버스 도착 시간을 보기 위해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읏.”





목덜미에 닿는 차가운 느낌에 어깨를 움츠리며 시선을 돌리니, 원우가 손끝으로 자신의 뒷목에 붙어있는 파스를 쓸어내리고 있었다. 엉성하게 붙여 울퉁불퉁한 느낌이 원우의 손가락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파스가 붙어있긴 하지만 얇은 탓에 손가락으로 훑어내리는게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어깨를 움츠린 순영이 의아함과 당혹감이 섞인 눈으로 원우를 바라본다. 천천히 손을 거둔 원우는 말없이 순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묘한 긴장감이 둘 사이에 흐른다.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원우의 눈이 짙어져 어떤 의도인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띵.





차임이 울리며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먼저 시선을 돌린 원우가 걸음을 옮기자 순영도 그 뒤를 따랐다. 원우는 차가 주차되어있는 층을 누르고, 순영은 버스를 타기 위해 1층을 눌렀다. 버튼에서 멀어지는 순영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던 원우는 순영의 눈을 마주한 채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차 고장났다고 했죠? 그럼 버스타고 가요?”

“네. 그래야죠.”





목소리가 흩어지지 않게 노력하며 대답했다. 긴장감으로 인해 누군가가 목을 콱 막고있는 느낌이었다. 순영은 점점 1층에 가까워지는 숫자를 바라보다 저도 모르게 뒷목을 쓸어내렸다. 아까 원우가 손가락으로 훑은 부위였다. 그걸 깨닫자 붉어지는 얼굴을 진정시키려 필사적으로 다른 생각을 하려 애썼다. 





4, 3, 2, 1. 띵. 다시 차임이 울리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순영은 원우에게 가볍게 인사하며 엘리베이터를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문 밖으로 채 발을 내딛기도 전에 원우가 자신의 손목을 꽤나 조심스럽게 잡아왔다. 순영은 말없이 원우를 바라봤다. 원우 또한 말없이 순영을 바라보고 있다. 원우를 한 번, 잡힌 손목을 한 번, 닫힐 것 같은 문을 한 번, 그리고 다시 원우를 한 번. 순영의 시선이 이리저리 옮겨가는 모양을 보고있던 원우가 입을 열었다. 





“데려다 줄게요.”






**






안전밸트를 맨 채 조수석에 얌전히 앉은 순영은 도로록 눈을 굴렸다. 러시아워로 인해 도로가 꽉 막혀있었다. 신호가 바뀌어도 차는 좀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제대로 달리지 못하는 탓에 밑바닥에 가라앉아있던 매연이 조금씩 퍼져, 창문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탁해졌다. 순영이 저도모르게 미간을 좁히자 창문을 닫은 원우가 에어컨을 틀었다. 미지근하던 바람은 곧 적당히 시원해졌다. 





데려다주겠다는 원우의 말에 고민하던 순영은 조심스럽게 거절했다. 표면상으로는 자신의 집에 들렀다 가기엔 번거로울 것 이라는 이유였으나, 실제로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변질된 분위기가 어색했기 때문이다. 거절하는 순영의 말을 들은 원우는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순영이 마음만 먹으면 뿌리칠 수 있게, 잡힌 손목은 느슨했다. 순영은 원우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결국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순영은 원우에게 신세를 지기로 했다. 퇴근시간의 버스는 출근시간의 상황과 비슷하니, 이왕이면 편하게 가는게 좋지. 저 구석에서 피어나려는 마음을 내리누르며 애써 그렇게 생각했다. 




“집이 어디예요?”




초록불이 들어온 좌회전 신호에 핸들을 부드럽게 틀며 원우가 물었다.





“저 **동이요.”

“어? **동이요?”

“네.”

“저도 그 동네 살아요.”

“정말요?”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되묻는 순영의 목소리가 반가움으로 높아졌다. 




“네. **역 2번출구로 쭉 가면 편의점 있죠? 그 근처요.”

“와. 저도 그 근천데. 맨날 그 편의점 지나치거든요.”




서로의 집 또한 생각보다 가까웠다. 입사 동기, 동갑, 비슷한 승진시기. 여기서 집도 가까운게 추가됐다. 원우와 순영 사이에는 교집합이 생각보다 많았다. 신기하네요. 흥분으로 인해 순영의 볼이 붉게 물들어있었다. 





“권대리님.”

“네?”

“괜찮으면 차 수리 될 때 까지 저랑 같이 출퇴근할래요?”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순영이 눈을 꿈뻑였다. 같이요? 네. 순영이 멍하니 되묻자 정면을 바라본 원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 저야 감사하죠.”

“내일부터 출근 같이하면 되겠네요.”




네. 짧게 대답한 순영은 시선을 돌려 슬쩍 원우를 바라봤다. 매끄러운 옆모습을 바라보다 꽉 막힌 도로가 답답한 듯 핸들을 쥔 채 까딱이는 손가락을 멍하니 바라봤다. 문득 자신의 목덜미를 훑던 느낌이 떠오른 순영의 얼굴이 조금 붉어진다. 그러다 의문이 떠오른다. 왜 그런걸까?





회사 사람들끼리 아무리 친하다 하더라도, 보통은 그런 행동은 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의문이 담긴 눈으로 원우를 바라봤지만 별다른 말이 없었다. 단순히 엉성하게 붙인 파스가 우스워서 그랬다기엔 그 때 원우의 손길, 눈빛, 또 미묘했던 공기가 다른 느낌을 가지게 했다. 그냥 슥 만지는 것도 아닌, 조금 느릿하게 훑는 느낌이, 마치…. 





아파요?”

“네?”

“뒷목을 계속 만지길래요. 아직 아픈가 해서요.”

“아! 아니요. 별로…, 아픈 건 아니예요.”

“그럼 다행이고요.”





저도 모르게 뒷목을 쓸어내린 모양이었다. 화들짝 놀란 순영이 손을 내리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원우가 다행이라 말하며 다정하게 웃어보였다. 가라앉았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콩, 콩. 평소와 비슷한 것 같지만 조금 빠르게 뛰는 심장이 느껴졌다. 





원우도 같은 성향인걸까? 궁금했지만 뜬금없이 물어보기가 애매했다. 게다가 클럽에서 마주친 이후로 그 때의 이야기를 안 꺼내는 걸 보면, 순영이 그 쪽인걸 모르는 척 해주려는 것 같았다. 만약 원우가 그 쪽이 아니라면, …그냥 재미삼아 자신을 가지고 노는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순영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가라앉으려는 기분을 애써 떨쳐낸 순영의 눈에 낯익은 장소가 들어왔다. 아까 원우가 말했던 편의점을 막 지나가던 참이었다.




“대리님, 여기서 세워주면 돼요.”

“집 앞까지 태워다 드릴게요.”

“아니예요. 번거로울텐데 그냥 세워주세요.”




비상등을 켠 원우의 차가 편의점 앞에 정차했다. 무릎 위에 올려놓았던 가방을 들며 내릴 준비를 하는 순영의 모습을 몸을 살짝 튼 채로 바라봤다. 안전밸트를 푼 순영이 원우와 시선을 마주하자 눈을 접으며 웃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권대리님도요. 내일 8시에 여기서 봐요.”

“네.”

“…권대리님.”




짧게 대답한 순영이 몸을 틀어 차문을 열기 위해 손을 뻗자 원우가 나지막하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손목을 잡아당겼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원우의 얼굴이 바로 앞에 있었다. 당황한 순영이 눈을 크게 뜬다. 




원우는 순영의 까만 눈, 잘 뻗은 코, 예쁘게 자리잡은 입술까지 천천히 훑어본다. 그 시선을 받아내는 순영은 등허리가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미묘해졌다. 순영의 눈을 한동안 뚫어져라 바라보던 원우가 손을 들어 순영의 눈 밑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반사적으로 한쪽 눈을 찡그린 채 원우를 바라봤다. 생각을 알 수 없는 얼굴이 순영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조금씩 멀어진다. 




“뭐가 묻어서요.”

“…네.”




말하는 원우의 목소리도, 대답하는 순영의 목소리도 가라앉아있었다. 그럼 가볼게요. 시선을 아래로 한 채 잠시 있던 순영이 웅얼거리듯 말하며 차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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