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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해.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기상한 순영의 눈가에 졸음이 가득했다. 잠에서 깨는게 쉽지않아 어떻게 준비를 마쳤는지도 모른채 집을 나섰다. 이전보다 조금 선선해진 공기가 살짝 젖은 머리카락을 헤집어놨다. 날씨가 가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무의식중에 주차장으로 향한 순영은 낯익은 차를 찾다 아차 싶었다. 자신이 왜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는지에 대해 잊고있었기 때문이다.
어제 외근을 나갔다 복귀하는 길에 접촉사고가 났다.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경미한 수준의 사고도 아니었다. 보험사에서 차를 견인해 간 뒤, 딱히 불편한 곳이 없던 순영은 그길로 사무실에 복귀했다. 한참 업무를 보는 도중 보험사에서 온 연락은 순영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차가 충돌하면서 부품 하나가 손상됐는데 하필 그 부품이 문제가 있어 전량 회수 후 재생산에 들어갔고, 생산에서 수급까지 못해도 일주일은 걸릴 것 같다는 소식이었다. 운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버스 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육중한 소리를 내며 순영의 앞에 멈춰선 버스는 이미 사람들로 빽빽하게 들어차있었다. 이걸 타면 죽을지도 몰라. 저도 모르게 긴장한 눈빛으로 버스를 한 번,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한 번 확인했다. 7시 46분. 조금 일찍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서있는 것 자체가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그렇다고 다음 버스를 타기엔 분명 비슷한 상황인데다 아슬아슬한 시간에 도착할 게 분명했다. 택시를 탈까? 재빠르게 주변을 훑었지만 빈차가 떠있는 택시는 없었다. 그래. 어차피 수리비 때문에 돈도 없는데… 버스를… 타자. 순영은 사뭇 비장한 표정을 한 채 버스에 올랐다.
…가, 1초만에 후회했다. 자신을 태워준 게 신기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버스가 움직일 때 마다 인파속에 파묻힌 순영의 몸 또한 속절없이 흔들렸다. 정류장이 가까워지는 모양인지 버스가 점점 느려지다 이내 멈추자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휘청이는 몸을 가까스로 추스른 순영은 창문 위에 붙어있는 버스 노선만 뚫어져라 바라봤다. 앞으로 한정거장만 더 버티면 된다고 되뇌이며.
**
만원버스는 내리는 것 조차 쉽지 않았다. 빽빽한 사람들 틈 사이를 비집어 겨우 뒷문에 도착한 순영은 닫힐 것 처럼 아슬아슬하게 열려있는 문으로 빠져나왔다. 하아. 크게 한숨을 내쉬는 작은 얼굴에 피곤이 묻어있었다. 예전엔 버스타고 어떻게 출퇴근했나 몰라. 그땐 지금보다 어렸으니까 가능했던건가. 정신이 멍한 탓인지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이상태로 사무실 들어가면 아침부터 늘어질 것 같았다. 커피라도 마셔야지.
문을 열고 들어선 카페는 아침시간 치고는 사람이 많았다. 얼마나 걸리려나. 카페안을 둘러보며 시간을 가늠하는 순영의 어깨를 누군가 두드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상대방을 확인한 순영의 표정이 반가움으로 물들었다. 원우가 자신의 앞에 서있었다.
“전대리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커피 포장해가시게요?”
“네. 권대리님도요?”
“네, 오늘 좀 피곤해서요.”
“어제 늦게 잤어요?”
“아, 아뇨. 그건 아닌데. 버스타고 출근해야 해서요.”
“버스요? 권대리님 차 있지않아요?”
사고나서 수리 맡겼거든요. 한 일주일정도 걸릴 것 같다는데 그때까지 버스타고 다녀야해요. 칭얼거리는 듯한 말투에 원우의 눈빛에 걱정이 어렸다. 어디 다친데는 없어요? 형식적으로 물어보는 말이 아닌 진심어린 걱정의 말에 순영은 눈을 깜빡였다. 어라. 심장의 울림이 조금 커졌다. 자신을 내려다보며 대답을 기다리는 원우의 시선이 한없이 다정했다. 이상하네. 옅었던 귀 끝의 색이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왜, 심장이. 갑작스레 빨리 뛰는 심장을 내리누르는 순영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있었다. 원우는 조금씩 붉어지는 순영의 얼굴을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괜찮아요?”
“어, 네. 괜… 괜찮아요.”
아마도요. 순영은 원우의 시선을 피하며 작게 웅얼거렸다. 다음 분 주문 받을게요. 때마침 들려오는 목소리에 아무렇지 않은 척 원우에게 물었다.
“전대리님 커피 뭐 드실래요? 제가 살게요.”
“아. 괜찮아요.”
“지난번에 일도 도와주셨잖아요.”
“정말 괜찮은데.”
“제 마음대로 주문 합니다?”
“그럼 아메리카노요.”
괜찮다는 자신의 말에 아랑곳 않고 커피를 사주겠다며 고집을 피우는 순영을 바라보는 원우의 표정이 풀어져있었다. 아메리카노 하나랑 카페라떼 하나 주세요. 메뉴를 읊으며 주문하는 뒷모습이 퍽 귀여워보였다. 분명 저와 비슷한 복장의 옷을 입고있는데 말이다. 저 볼 때문인가. 조금 통통해보이는 볼은 순영이 말할 때 마다 꼼지락거리며 움직이고있었다.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작게 웃자 까만 눈동자가 의문을 품은채 원우를 바라본다.
“왜그래요?”
입술도 귀엽네. 오물대는 입술에도 원우의 시선이 잠시 머물렀다. 아무것도 아니예요. 여전히 의문을 떨치지 못한 시선이 원우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떨어졌다. 아메리카노 한잔 라떼한잔 나왔습니다. 커피를 받아든 순영이 원우의 몫을 건넸다.
“잘 마실게요.”
“네. 사실 이거보단 밥 한끼 사야 맞는 것 같은데.”
“…”
“나중에 시간 될 때 말해주세요.”
“네.”
아 맞다! 커피를 든 채 출구로 향하던 순영의 발걸음이 멈췄다.
“저 시럽 좀 짤게요.”
“네.”
카운터 근처에 놓인 시럽통 앞에서 플라스틱 뚜껑을 벗기더니 쭈-욱-, 쭈-욱-, 시럽을 두번 눌러 짠 손길이 머뭇거렸다. 아마 한번 더 짤지 말지 고민하는 듯 보였다. 머뭇거리던 손이 시럽 펌프를 살짝 눌렀고 순영은 여러가지로 만족스러운 표정-아마 완벽하게 3번 안 짰다는 것에 만족한 듯 싶었다-을 지으며 걸어오다 원우와 시선이 마주쳤다.
“…어.”
자신이 보고있을 줄 몰랐다는 듯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굴리더니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제가 단걸 좋아해서요.”
절대 쓴 거 싫어하는건 아니고요. 오늘 너무 피곤해서 단게 땡겨서 그래요. 어휴, 누가 시럽을 세번이나 짜서 먹어요? 그쵸? 하하.
**
쪼로록, 밑바닥을 드러낸 커피가 빈소리를 냈다. 얼음이 녹은 탓에 끝맛은 거의 물에 가까웠다. 이상하단 말이지. 스트로우를 앞니로 씹으며 순영은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아까 카페에서 자신이 느꼈던 감정은 여태껏 원우에게 느껴왔던 감정과 다른 것이었다. 아니지. 솔직히 말해 감정을 느낀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원우와 거리가 있는 사이었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운 걸지도 모른다. 분명, 아까 원우의 다정한 눈빛에 반응한 건 사실이었다. 순영 자신도 얼굴이 붉어지는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런 시선을 오랜만에 받아서 그런걸까? 되짚어보니 마지막으로 연애를 한 게 벌써 반년이나 지났다. 그동안 일이 바빠 상대를 만들 생각도, 원나잇 상대를 찾을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러다 모처럼 시간내 들른 클럽에서 전원우 대리를 만난거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한 기분에 순영은 눈을 꾸욱감았다. 아웃팅 위험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사내에 자신에 대해 별다른 소문은 없었다.
그런데 전원우 대리도 그쪽인가. 원우가 그쪽인지 아닌지 물어보지 않아서 확인이 불가능 했지만 ‘그런’클럽에서 마주쳤기 때문에 그쪽 성향이라 어림잡아 짐작할 뿐이다. 당시에 물어봤으면 몰라도 이제와서 그 이야기를 꺼내기도 애매했다.
“…리.”
“…
“…권…리.”
“…”
“권대리!”
“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생각에서 벗어난 순영은 시선을 돌렸다. 명욱이 꽤나 걱정스럽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해?”
“아. 아무것도 아니예요.”
“어디 아파? 어제 사고 난 것 때문에 그런거 아니야?”
“아니요. 그건 아니고, 잠시 딴생각 좀 하느라….”
“정말 괜찮은거야? 병원도 안갔다며.”
“네. 괜찮아요. 아픈곳도 없어요.”
“안아프다고 해도 말이야, 병원은 갔다와야지. 제일 무서운게 교통사고 후유증이라고.”
쏟아지는 잔소리에 순영은 어색한 웃음만 지을 뿐이다. 괜한 참견으로 치부하기에는 명욱의 말투에 걱정이 담겨있었다.
“지금은 괜찮을지 몰라도 나중에 고생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하하. 나중에 가던가 할게요. 벌써 점심시간이네. 식사하러 가시죠.”
걱정해주는건 고맙지만, 사고 후 아픈곳이 없기 때문에 병원에 갈 이유를 찾지 못한 것 뿐이다. 명욱의 잔소리가 더 길어질세라 재빨리 화제를 돌린 순영은 지갑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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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저서 재송합니다.. 변명을 좀 해보자면.. 이번편은 원래 지난달에 올렸어야했는데
한번 날리는바람에 다시 마음잡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어요ㅠㅠ
다음부터는 게으름 피우지 않겠습니다.. 정말로요...ㅠㅠ
그리고 진도도 빨리 빼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읽어주시는 분들,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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