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우순영] 너에게 흔들리고 있어 14w. 소라 정비소에서 차를 가져온 순영은 원우와 만나기로 한 편의점 앞에 잠시 정차했다. 약속된 시간보다 늦게 도착할까 봐 급히 오느라 카 오디오를 켜지도 못한 차 안은 비상등이 깜빡이는 소리만 들렸다. 시간을 확인하니 아직 10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그제야 한숨 돌린 순영은 룸미러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본다. 창문을 조금 열어둔 탓에 머리가 흐트러진 것 빼고는 집을 나설 때와 똑같았다. 거울에서 시선을 뗀 순영은 제 옷차림을 살핀다. 첫 데이트라 그런지 자신이 봐도 퍽 신경 쓴 테가 났다. 원우는 어떤 차림일까. 문득 궁금함이 일었다. 사내에 복장과 관련된 규정은 없다. 다른 부서 사람들은 격식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캐주얼하게 입고 다니지만, 자신과 원우는 영업부..
[원우순영] 너에게 흔들리고 있어 13w. 소라 “권대리님. 퇴근 안하세요?”“아. 이제 해야죠.”“밑에서 기다릴게요.”“네.” 어느새 여섯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기다린다는 원우의 말에 자리를 정리하자 파티션 너머로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궁금함을 가득 담은채로. 가방을 챙길 때 까지도 의문 섞인 시선이 따라붙었다.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인사도 안하고 퇴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순영이 명욱에게 인사하기 위해 몸을 틀자 기다렸다는 듯 질문이 쏟아진다. “뭐야? 전대리가 왜 권대리를 기다려? 둘이 같이 퇴근해? 언제 그럴만큼 친해진거야?”“저 안 도망가니까 하나씩 물어보세요.”“전대리가 왜 기다리는거야?”“차가 고장나서 같이 출퇴근 하고 있어요. 몰랐는데 집이 근처더라고요.”“어쩐지. 그래서 요즘 붙어다녔구..
시간이 늦은 탓에 추위가 더 깊어졌다. 내뱉는 숨마다 하얀 입김이 흘러나왔다. 뭉쳐있던 하얀 것은 공기 중으로 흩어지며 점차 옅어지더니, 이내 사라져버린다. 3차로 이동하자며 부산을 떨고 있는 팀원들 사이에서 승철은 조용히 빠져나와 걸음을 옮겼다. 평소 같았으면 자신 또한 함께 자리를 옮겼겠지만, 오늘은 몸 상태가 평소보다 좋지 않았다. 정확히는 기분이 가라앉았기 때문이리라. 취기로 인해 적당히 데워진 몸은 별다른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연말이라 그런지 자정에 가까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번화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가게마다 새어 나오는 소리와 인접해있는 4차선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도시의 소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취기가 오른 머리는 흐려지기는커녕, 오히려 또렷해져 와 그 소음들이 날카롭게 귀..
[원우순영] 너에게 흔들리고 있어 12w. 소라 회사 로비를 지나 밖으로 나오자 바람이 불어왔다. 불과 며칠 전 까지만 해도 열을 동반한 무거운 습기를 머금고 있던 바람이 가벼워졌다. 무덥던 여름이 지나 비로소 가을이 오는 모양이었다. 하루 중 가장 높은 곳에 떠 있는 태양 덕분에 눈이 부셔 손으로 차양을 만든 순영의 눈가가 조금 찌푸려진다. 바람이 시원해진 것과는 별개로 햇빛은 여전히 뜨거웠다. “조금 덥네요.”“그러게요.” 원우도 마찬가지인지 눈 위를 가린 채였다. 4차선 도로를 옆에 둔 채 오피스 빌딩이 줄지어 선 거리를 나란히 걸었다. 더위에 유독 취약한 탓에 순영의 목소리가 조금 불퉁하게 나왔다. 옆에 선 원우는 자신보다 시선이 조금 아래에 있는 순영을 바라본다. 순영의 오른편에 서 있는 탓에 ..
[원우순영] 너에게 흔들리고 있어 11w. 소라 바쁘게 손을 움직이던 순영의 눈이 시계를 확인한다. 출근하자마자 쌓여있는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어느덧 11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잠시도 쉬지 못한 눈이 따끔거리며 피로를 호소했다. 굳어져 있던 몸을 의자 등받이에 기댄 순영은 한숨을 내뱉었다. 일을 하면 할수록 업무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쌓이는 것만 같았다. 조금씩 흐릿해지는 눈가를 꾹꾹 누르던 순영이 몸을 일으켜 탕비실로 향했다. 왠지 모르게 몸이 늘어져 커피를 마셔야 하나 고민하며 걸음을 옮겼다. 반쯤 열려있는 문으로 들어가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잠시 걸음을 멈춘 순영은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열려있던 문틈 사이로 들어오던 사무실의 소음들이 뚝 멈췄다. 달칵. 문이 닫히는 소리에 원우가 뒤를..
[원우순영] 너에게 흔들리고 있어 10w. 소라 한동안 기승을 부렸던 무더위가 지나가고 가을이 찾아왔다. 온통 초록빛으로 가득했던 거리의 가로수들이 조금씩 색을 달리하고 있었다. 한낮은 아직 덥지만 해가 떨어지고나면 쌀쌀해지곤 했다. 내내 얇은 여름용 셔츠를 입던 순영은 간절기용 셔츠를 꺼내입었다. 조금 열려있는 차창을 통해 출근길의 소음이 고스란히 흘러들어온다. 자동차 배기음과 클락션소리가 뒤섞여 소음을 만들어냄에도 불구하고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신경쓰이는 쪽은 다른 곳이었다. 순영은 옆자리에 앉은 원우를 훔쳐보듯이 힐끔거린다. 핸들을 쥐고 있는 곧은 손, 수트 소매사이로 드러나는 와이셔츠의 커프스, 정면을 바라보고있는 옆모습 같은. 처음 보는 모습이 아님에도 원우의 모든게 새롭게 와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