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늦은 탓에 추위가 더 깊어졌다. 내뱉는 숨마다 하얀 입김이 흘러나왔다. 뭉쳐있던 하얀 것은 공기 중으로 흩어지며 점차 옅어지더니, 이내 사라져버린다. 3차로 이동하자며 부산을 떨고 있는 팀원들 사이에서 승철은 조용히 빠져나와 걸음을 옮겼다. 평소 같았으면 자신 또한 함께 자리를 옮겼겠지만, 오늘은 몸 상태가 평소보다 좋지 않았다. 정확히는 기분이 가라앉았기 때문이리라. 취기로 인해 적당히 데워진 몸은 별다른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연말이라 그런지 자정에 가까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번화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가게마다 새어 나오는 소리와 인접해있는 4차선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도시의 소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취기가 오른 머리는 흐려지기는커녕, 오히려 또렷해져 와 그 소음들이 날카롭게 귀..
"쌤. 낙엽이 떨어지기 전에 제가 죽을까요?" 순영이 말갛게 웃으며 말했다. 차트를 훑어보며 며칠전에 받은 검사에 대한 설명을 해 주고있던 차였다. 순영의 어투는 오늘은 산책을 하러 나가도 되는지를 묻는 듯 가벼워 원우는 하마터면 순영의 말을 흘려들으며 그래, 라고 대답할뻔했다. 원우는 저도 모르게 차트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것이 느껴졌다. 시선을 돌려 순영을 바라보자 여전히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원우는 차트를 덮으며 한숨쉬듯 말했다. "아직 5월이야 순영아." 이제 막 초록빛을 띄기 시작한 잎들이 색을 잃고 바람을 이기지 못할만큼 약해지기엔 아직 이른 시기였다. 손에 쥐고있는 차트에는 점차 호전되고있는 순영의 상태가 써져있었다. 순영이가 병을 이겨내고 조금씩 건강해지고 있다는 것과 동시에 곧 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