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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우순영] 너에게 흔들리고 있어 2
w. 소라










별 말 아니라 다행이긴 무슨. 순영은 밥먹자는 말 한마디가 이렇게 큰 무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점심시간이 다가올수록 순영은 보이지않는 압박감이 자신을 짓누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이 압박감은 내 뒤에서 오는거야. 원우의 자리를 힐끔 바라본 순영은 앓는 소리를 냈다. 아까 전대리한테 말걸지 말 걸. 괜히 사서 일을 만드는 꼴이됐잖아. 어깨를 늘어트린 순영은 의미없이 마우스만 딸깍였다. 시간이 느리게 흘렀으면 하는 순영의 바람과는 달리 부지런히 움직인 시계바늘은 어느덧 정오를 가리키고 있었다. 권대리 점심먹으러 가자. 파티션 옆으로 얼굴을 내민 명욱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저는 전대리님이랑 점심약속이 있어서요."
"아. 그랬지. 맛있게 먹고와. 또 싸우지 말고."



싸우긴 누가 싸운다고 그래요. 아까도 그냥 얘기만 한거거든요? 순영이 볼멘소리로 투덜거리듯 한 말을 변명이라 생각한건지 다 알고있다는 듯한 시선을 보낸 명욱이 웃었다. 그래그래. 있다가 봐. 자신의 어깨를 토닥인 뒤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순영이 억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진짜 안 싸웠는데. 괜한 오해를 받은탓에 입술을 삐죽이던 순영은 문득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우리도 점심 먹으러 가죠. 낮게 내려앉는 원우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인 순영이 몸을 일으켰다.







1층 로비로 내려가는 엘레베이터 안은 어색한 기류와 침묵이 뒤섞여있었다. 조금 거리를 두고 서있는 원우의 기척이 순영에겐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 점점 1층과 가까워지는 숫자만 멀뚱히 바라보던 순영은 엘레베이터 문이 열림과 동시에 발을 옮겼다. 재빠르게 빠져나가는 순영의 뒤를 따르는 원우의 입꼬리가 올라가있었다. 정면을 본 채로 눈만 깜빡이는 옆모습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건물 출구가 최종 목적지 인 것 마냥 앞만 보고 걷는 순영의 옆에서 함께 걸음을 옮기던 원우가 꽤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 먹을래요?"



던져진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느려진 순영의 걸음걸이에 맞춘 원우는 차분하게 대답을 기다렸다. 순영의 머릿속에 회사 근처에 있는 식당들이 떠올랐지만 더운 날씨탓에 식욕이 떨어졌는지 딱히 가고싶은 곳이 없었다. 



"전 아무거나 좋아요."



꽤나 길게 고민하는 것 같았는데 아무거나라니. 다른 사람 같았으면 짜증날 법한 대답임에도 불구하고 왠지모르게 원우는 이 상황이 즐거웠다. 저를 힐끔거리는 순영의 시선이 꼭 주인 눈치보는 햄스터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그게 제일 어려운 말인 거 알아요?"
"별로 안 어렵…!"




'아무거나' 라는게 무책임한 대답이라는 걸 알고있던터라 말을 뱉어놓고 슬며시 원우의 눈치를 본 건 사실이었다. 자신의 대답을 탓하는 듯한 말에 발끈한 순영이 원우에게 따지려했지만 누가 입을 막은 것 마냥 말이 막혔다. 원우가 자신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웃고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뜻이 아니었나. 왠지모르게 민망해져 두어번 헛기침을 한 순영이 말을 이었다. 



"그럼 이 앞에 해장국집 어때요?"
"거기로 가죠."



전원우 대리는 웃는것도 잘생겼어. 순영의 머릿속에 사무실 여직원들이 하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그때 그 얘기 들으면서 코웃음 쳤던 것 같은데 왜 그런말을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될 것도 같고.   






***






점심시간의 식당은 항상 붐비는 탓에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전체 회식을 제외하고 단 둘이 밥을 먹는건 처음이라 어색한 기분만 들었다. 완전 다른 세상 같네. 조용하기만 한 둘의 테이블과는 달리 북적거리는 주변을 둘러보던 순영은 생각했다. 평소같았으면 사소한 이야기라도 할텐데 전원우 대리와 대화를 한 적이 한손으로 셀 수 있을정도로 적어 어떤 주제를 꺼내야할지 감이 안잡혔다. 같은 팀원들이야 오랜시간 함께 일해온만큼 서로의 성격도 파악한터라 장난도 자주치지만 말도 많이 안섞어본 전원우 대리에게 무턱대고 장난을 칠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야하는거지? 여직원들이 원우의 이야기를 할 때 어설프게 주워들은 것들을 생각해내려 했지만, 떠오르는 것 이라곤…. 



- 전원우 대리 잘생겼다.
-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생길수가 있지?
- 키도 크고 잘생겼는데 일도 잘 해
- 못하는게 뭐야?




떠오르는건 온통 잘생겼다는 이야기 뿐이라 순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전원우 대리 잘생긴건 나도 알겠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잘생겼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김치찌개 좋아하냐고 물어볼까? 아냐. 이미 식당에 들어왔는데 그런거 물어봐서 뭐해. 그럼 취미가 뭐냐고 물어볼…. 취미를 물어보는 것도 너무 뜬금없는데. 무슨 말을 꺼내야할지 끙끙대며 고민하던 순영은 아무 생각없이 시선을 옮기다 원우와 눈이 마주쳤다. 원우가 바로 앞에 앉아있는데도 눈이 마주칠거라 생각도 못했던 순영은 눈만 깜빡이며 원우를 바라보다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전대리님은 주말에 뭐하세요?"
"그냥 집에서 쉬거나 술마시러 나가죠."



술 이야기에 지난 금요일이 떠올라 순영의 표정이 더 어색해졌다. 아~ 그러시구나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듯 눈을 데룩 굴리며 대답하는 모습에 원우의 입꼬리가 금방이라도 올라갈 듯 꿈틀거렸다. 모르는 척 하는건가? 어색하게 웃는 얼굴에서 당황스러움을 읽은 원우가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지난주에 권대리님이랑 마주쳤던 그 클럽 있죠?"
"..."
"주로 거기로 갑니다. 술마시러."
"하하. 그, 그러시구나. 저도 거기 가.끔 가요. 술마시러."



헌팅같은건 안하고 오직 술만 마시러 간다는 듯한 뉘앙스에 원우의 웃음이 짙어졌다. 그 웃음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다정함이 묻어나던 아까의 웃음과는 전혀 다르다는걸 눈치챈 순영은 지지 않겠다는 듯 똑같이 웃는 얼굴로 원우를 바라봤다. 권대리는 얼굴에 생각이 다 드러나네. 원우는 떠오르는 생각을 굳이 내뱉지 않았다. 




"다음에 같이 술마시러 가죠."
"풉."



다만 더 짓궂게 굴 뿐이었다. 입 안이 말라오는 듯 물을 마시려던 순영은 예상치도 못한 말에 물을 내뿜을 뻔한걸 가까스로 참아냈다. 콜록, 콜록. 물이 잘못 넘어갔는지 잔기침을 해대는 순영에게 퍽 걱정스럽다는 목소리로 원우가 괜찮냐고 물었다. 터져나오는 기침을 겨우 가라앉힌 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아요. 기침탓에 붉어진 눈가를 훔치며 대답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원우가 말을 덧붙이려던 찰나였다.



"식사 나왔습니다. 뜨거우니까 조심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순영이 건네주는 수저를 받으며 원래 하려던 말 대신 다른 말을 덧붙였다. 네. 전대리님도요. 눈을 내려뜬 채 부지런히 젓가락을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던 원우도 식사를 시작했다.







주문했던 음식이 나온 후로는 먹는것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어색함을 느낄새도 없었다. 식사를 마치자 왠지모르게 느슨해진 기분이 든 탓에 원우와 처음보다 스스럼없이 대화하며 사무실에 복귀할 수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다가온 명욱이 순영의 옆구리를 찌르며 물었다. 밥 잘 먹고 왔어? 그 말 뒤에 숨은 호기심-둘이 싸웠나 안싸웠나 하는-을 알아차린 순영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완-전 잘 먹고 왔어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둘이 밥먹다가 싸우는거 아닌가 사람들이 얼마나 걱정했다고."



전혀 걱정한 표정이 아닌데. 오히려 지금 상황을 재밌어 하는 것 같았다. 저와 원우의 사이가 그렇게 안좋아 보였나? 사이가 좋은건 아닌데, 그렇다고 얼굴만 봐도 서로 으르렁 댈 정도로 사이가 나쁜것도 아니었다. 아까 제가 원우에게 말을 걸면서 풍겼던 분위기때문에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같았다. 



"에이. 그런 거 아니예요. 저 커피 마실건데 같이 가실래요?"
"아냐. 난 아까 마셨어. 갔다와."
"넵."




자연스럽게 주제를 바꿔 자리를 벗어난 순영은 탕비실로 향했다. 명욱의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해주는 것도 곤욕이었다. 성격이 나쁜건 아닌데 호기심이 강해 가끔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때가 있었다. 적당히 넘어가주면 좋을텐데. 아마 커피를 핑계로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면 저를 붙잡고 계속 질문을 할 게 뻔했다. 얕은 한숨을 내쉬며 커피를 내린 순영은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며 자리로 돌아갔다. 






**

원래 주에 1편은 올리려고 했는데.. 언제나 그렇듯 의지박약의 인간..

기다리신 분들이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다음편은 좀 빨리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ㅠ 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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