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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웆홋] 길고 길었던 연애의 끝

soraaaa 2016. 7. 27. 15:07






길고 길었던 연애의 끝
w. 소라
12번째 웆홋 전력 :: 길고 길었던 연애의 끝








- 우리 결혼할까?





지훈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순영의 손에 들려있던 숟가락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내가 지금 뭘 들은거지? 제가 잘못들었나 싶어 눈을 꿈뻑이며 지훈을 바라보던 순영이 멍청하게 물었다. 뭐라고? 나름대로 폭탄발언을 한 것 치고 덤덤히 식사를 하던 지훈은 돌아오는 반문에 조용히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탁, 숟가락과 식탁의 유리 표면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지훈이 진지한 눈빛으로 순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 우리 결혼하자.






그자리에서 자신은 뭐라 대답했던가. 터질 것 처럼 뛰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지훈을 바라봤다. 평소에도 함부로 말을 흘리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내뱉은 저 말이 농담일리는 없었다. 차분한 눈으로 대답을 기다리는 지훈의 시선과 마주하던 순영은 잠긴 목을 두어번 가다듬었다. 






-그래.






덤덤하게 말하려 했지만 떨리는 목소리는 감출 수 없었다. 










**








사람들이 빠져나간 사무실은 한적했다. 의자에 기대듯 앉아있는 순영의 눈가가 피로로 물들어있었다. 요 며칠 결혼준비로 바쁘다보니 하루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사실은 결혼이라는게 산더미처럼 쌓인 문제를 해결하는게 아닌가 싶을정도로 하나가 해결됐다 싶으면 다른게 남아있고, 그걸 해결하면 또 다른게 남아있었다. 바쁜 와중에 그나마 좋은게 있다면 결혼준비때문에 지훈을 자주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평일에는 둘 다 일이 있기때문에 만나기 힘들고, 그나마 남은 주말도 피곤해서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하는게 어려웠다. 같이 저녁을 먹고 식장을 고른다거나, 평일 오후에 반차를 내고 예물을 보러 가는게 힘들면서도 행복했다. 진짜 결혼하는구나. 지훈과 결혼준비를 할 때마다 새삼스레 드는 생각이었다. 





눈을 감고있던 순영이 몸을 일으켜 시계를 바라봤다. 12시 30분. 점심시간이 30분밖에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오늘은 왠지 밥먹으러 나가는 것 조차 힘이 들어 샌드위치로 대충 끼니를 떼웠다. 30분동안 다 알아보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되는데까지 알아봐야 조금이라도 수월 할 것 같았다. 








**







결혼식은 지훈과 순영의 사이를 아는 지인들을 불러 작은 레스토랑에서 진행 하기로 했다. 말이 결혼식이지, 따지고보면 격식을 차린 분위기에서 지인들과 함께하는 식사자리나 다름없었다. 다른점이 있다면 둘이 서로의 동반자가 되기로 했다는걸 알리는 점이랄까. 장소 대관은 크게 어렵지않았다. 지인중에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어 둘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함께 오랜시간 해온만큼 서로의 취향을 잘 알아서인지 예물도 비교적 수월하게 결정됐다.






"내가 이지훈이랑 결혼을 하다니."
"왜? 결혼하기 싫어?"






아니. 너무 좋아서. 애교스럽게 웃는 순영을 바라보던 지훈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나란히 걷다가 집에 가기 아쉬웠는지 지훈이 눈짓으로 편의점을 가리켰다. 맥주 한 잔 할까? 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사올께. 야외테이블에 가방을 내려놓은 지훈이 편의점안으로 들어갔다. 카운터를 지나 주류코너로 향하던 지훈의 시선에 바나나우유가 걸렸다. 아.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춘 지훈이 바나나우유를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고등학생때 순영이 제게 작업을 건답시고 매일 바나나우유를 준 적이 있었다. 처음에야 아무 생각없이 받았지만 일주일이되고, 이주일이 지나가자 지훈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왜 이걸 매일 나한테 주는걸까? 쟤네집에 바나나우유가 넘쳐나나? 하지만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날도 다른날처럼 순영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지훈에게 바나나우유를 줬다. 너 이거 먹어. 고마워. 지훈은 책상위에 올려진 바나나우유를 바라봤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옮긴 시선의 끝에 붉어진 순영의 귀가 보였을 때 지훈은 깨달았다. 아, 권순영은 나를…. 





그 이후로 순영이 은근히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처음에 가졌던 작은 관심이 조금씩 크기를 부풀려 어느새 자신의 마음에서 꽤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걸 깨닫게됐다. 이상하지. 같은 또래, 그것도 같은 남자인 애가 자신에게 보였던 관심을 깨닫는 순간 기분이 나쁘기는 커녕 오히려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다니.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새에 순영을 마음에 두고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바나나우유를 손에 쥔 지훈은 카운터로 향했다.






"뭐야? 왠 바나나우유?"
"그냥. 옛날 생각나서."
"옛날생각?"







지훈에게 되묻는 순영의 표정이 꽤나 맹해보였다. 생소하다는 듯 바나나우유를 바라보는 표정을 보니 기억이 나지 않는 듯 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 너가 맨날 나한테 줬잖아. 그제서야 기억이 난 듯 순영의 눈이 커졌다. 




"아, 맞다! 그랬었지."
"그랬었지?"




지훈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바나나우유를 바라보던 순영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너랑 처음으로 같은 반 됐을때, 니가 좋은데 어떻게 표현해야하나 싶었거든. 같은 남자라는게 걸리는데 곧죽어도 표현은 하고싶었어. 니 기억속에 '같은반이었던 권순영' 으로 남는게 싫었거든. 어떻게하면 좋을까 싶던차에 아빠가 술먹고 나랑 누나 먹으라고 바나나우유 한박스를 사왔지 뭐야. 그 때 보자마자 이거다 싶었지. 한박스는 아니더라도 하루에 하나씩주면 그래도 더 기억에 남지않을까 싶어서. 너한테 들키는건 꿈에도 생각못했던 일이지만말이야. 니가 갑자기 나 불러내서 물었잖아. 너 좋아하냐고. 그 때 너무 당황해서 아무생각도 안나더라. 머리로는 아니라고 빨리 변명해야하는데 입술이 움직일 생각을 안하는거야. 이대로 니 눈밖에도 나고 학교에도 소문나겠구나 싶었는데 니 반응이 의외였지. 네가 나 좋아하는 것 같다고 그러면서 나한테 딸기우유 줬잖아. 





"내가 그랬었나."





민망한 듯 콧잔등을 긁으며 대답하는폼이 기억나는 듯 싶었지만 순영은 애써 말하지않았다. 어느새 바나나우유의 표면에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뜨거운 열기를 내뿜던 해가 사라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







이번달은 유독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일과 결혼준비를 병행하다보니 어느새 예정된 날이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예복으로 갈아입는 와중에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자신만 그런건가 싶어 지훈을 바라봤다.




"나 실감 안나."
"뭐가?"
"결혼하는거 말이야."




이게 현실이 아니라 눈 감았다 뜨면 꿈일 것 같아. 웅얼거리듯 말하자 지훈이 순영의 삐뚤어진 보타이를 매만져주며 말했다. 괜찮아. 꿈에서 깨어나도 내가 옆에 있을거니까. 지훈의 말을 들은 순영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응. 꼭 내 옆에 있어야해. 







축하해. 잘 살아라. 싸우지 말고. 하객들이 하나 둘 들어서며 지훈과 순영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웃으며 대답하는 둘의 얼굴이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조금씩 차는 실내를 바라보던 순영이 지훈의 옆구리를 찔렀다. 지훈아. 나 이제 실감나는 것 같아. 긴장한탓에 살짝 굳어진 순영의 얼굴을 바라보던 지훈이 작게 웃었다. 




"긴장돼?"
"응. 심장이 토할 것 처럼 뛰어. 너는?"





가슴을 내리누르며 말하자 지훈이 조용히 손을 잡아왔다. 나도 긴장된다. 어느새 지훈 또한 긴장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맞잡은 손에 힘을 준 순영이 지훈의 귓가에 속삭였다. 괜찮아. 내가 옆에 있잖아. 장난스레 속삭이는 말에 지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응. 내 옆에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식이 시작되었다. 둘의 지인 중 가장 친한 사람에게 주례를 부탁했다. 결혼식이 시작되기 직전까지도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걱정했지만 누가 들어도 박수를 칠만 한 훌륭한 주례사였다. 주례가 끝나고 예물로 준비한 반지를 서로의 손에 끼워주었다. 네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바라보자 울컥하는 감정이 들었다. 반지를 교환한 두사람이 자리에 앉았고 식사를 시작하려는데 순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스푼으로 잔을 가볍게 치며 하객들의 주의를 끌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순영을 바라보는 지훈의 시선이 의문을 담고있었다. 





흠흠. 목을 가다듬은 순영이 쪽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권순영입니다. 먼저 이름뿐인 결혼식이지만 오늘을 위해 시간을 내주신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오늘은 여러분이 알고있는 것 처럼 저와 지훈이의 새로운 출발을 위한 날입니다. 고등학생때 시작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오는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서로에게 상처되는말도 많이 내뱉었습니다. 뒤돌아서면 후회할 행동은 하지 말자는 다짐을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죠. 그래도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됐네요. 어, 그러니까. 지훈이한테 제가 장난처럼 결혼하자고 했던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니까 장난이긴 한데, 장난섞인 진담이었던거죠. 그 속에 담긴 진심을 지훈이가 알았을지는 모르겠는데 제 말을 들은 지훈이 반응은 항상 시큰둥했어요. 그냥 듣는둥 마는둥. 그래서 저는 결심했죠. 언젠간 제대로 된 프로포즈를 해야지! 하고요. 하지만 그건 이뤄지지 않았어요. 몇달 전에 지훈이네서 같이 밥을 먹는데 뜬금없이 결혼할까? 하는거예요. 그 어투가 마치 내일 데이트하자는 것처럼 평온해서 순간 제가 잘못 들은 줄 알았어요. 그래서 멍청하게 뭐라했냐고 되물어봤어요. 그러더니 하는 말이 이거였죠. 결혼하자. 처음엔 분명 할까? 였는데 다음은 하자. 였어요. 제 의견은 듣지도 않고 결혼을 진행 할 것 같은 어투였죠. 지훈이는 평소에도 마음에 없는 말은 잘 안하는 타입이예요. 그러니까 결혼하자는 말은 제가 했던 말처럼 가볍게 던져진 말이 아니라 무게감을 갖고있던거죠. 사실 저는 그 말에 조금 감동받았어요. 제가 결혼하자고 할 때마다 그냥 흘려듣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거죠. 음….





순영이 손에 들고있던 쪽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지훈을 한 번 바라보더니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아까 제가 지훈이한테 그랬어요. 결혼하는게 실감이 안난다고 꿈같다고 말이예요. 근데 지훈이가 꿈에서 깨도 자기가 옆에 있을거라고 괜찮다고 하는데 그 말이 너무 믿음직스러운거예요. 그 말을 듣고 얘랑 평생을 함께하기로 결정한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음. 앞으로 같이 살면서 싸우는 일이 없을거라고 확신은 못해요. 둘 다 좀 욱하는 성격이 있어서 분명 싸우긴 할거거든요. 그래도 최대한 덜 싸워가며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다시한 번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릴게요. 식사 맛있게 하세요.







자리에 앉은 순영이 내심 뿌듯한 표정으로 지훈에게 말했다. 나 멋있었지? 자신을 바라보는 지훈의 눈에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었지만 그 속에 있는 애정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어. 권순영 기특하네. 순영의 머리를 쓰다듬는 지훈의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기분이 좋은 듯 연신 웃음짓는 순영의 얼굴을 바라보는 지훈의 표정에도 행복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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