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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웆홋] 우산아래
11번째 웆홋 전력 :: 우산
W. 소라
11번째 웆홋 전력 :: 우산
W. 소라
아침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더라니, 결국 비가 오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비온다는 일기예보를 얼핏 들은 것도 같고. 내가 우산을 챙겼던가. 창밖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순영은 생각했다. 가방에 뭘 챙겨왔더라. 어느새 순영은 아침의 일을 되새기고 있었다. 떠지지 않는 눈을 한 채로 겨우겨우 일어나서 씻고, 아침을 대충 떼우고. 교복으로 갈아입고나서 가방을 챙겼었다. 교과서야 사물함에 놓고다니니 챙길일이 없고, 옆 반 친구한테 빌렸던 게임씨디를 챙긴 후에 운동화를 구겨신었다. 시계를 보니 지각할 것 같아 마음이 급했었다. 집을 나서기 전에 엄마가 뭐라고 말했던 것 같았는데 그게 우산 챙기라는 소리였나?
어쨌거나 우산은 순영의 가방에 없었다. 휴. 조그맣게 한숨을 내쉰 순영은 비로 인해 조금씩 습해지는 교실을 둘러봤다. 힘없이 털털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가 있고 수업을 듣는사람 반, 졸고있는 사람 반이었다. 교탁에 교과서를 내려놓은채로 수업을 하고있는 선생님을 바라보던 순영의 손이 책상 속에 있는 휴대폰을 꺼냈다. 눈을 살포시 내려 교과서를 읽는 척, 휴대폰을 바라봤다. 가장 위에 올라와있는 대화창을 누른 순영의 엄지손가락이 조용히 움직였다.
1 오후 2:12 지후나 나 우산이 없어 ㅜㅜ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는 숫자를 바라보던 순영은 휴대폰을 다시 책상 속에 넣었다. 이지훈 성격에 바로 답장이 올거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왠지모르게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수업중이니까 답장 못하는게 당연한거지. 그렇게 생각한 순영은 어느새 책상 끝에 가있는 연필을 다시 쥐었다. 과목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선생님의 목소리와 빗소리, 사각거리는 연필소리가 귓가에 흩어졌다.
정규수업이 끝나고, 야간자율학습이 끝날 때 까지 지훈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았다. 물론 읽지도 않았다. 속상한 마음에 저도모르게 입술을 내밀고 휴대폰을 내려다보던 순영의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이ㅣ지훈 너무한거아니냐
왜 답장안해
나 차단했냐?
너무해ㅐㅐㅐㅐㅐ
전송을 누르지 않은 채 칸을 띄워가며 메세지를 써내려가던 순영이 움찔거렸다. 아. 읽었다. 눈에 거슬리던 숫자가 드디어 사라졌다. 이상하게 두근거리는 마음을 한 채 한참을 바라봤지만 기다리던 답장은 오지 않았다. 서운한 마음을 넘어서 속상해지려고 하는데. 답장 해 주는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이지훈 바보. 똥개. 말미잘! 해삼! 파프리카! 입술을 꼼실거리며 중얼거리던 순영이 숨을 들이켰다. 손에 쥐고있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한 탓이었다. 액정에 선명하게 떠오른 이름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받을까, 말까. 마음같아선 너도 속 좀 타봐라! 하며 무시하고 싶지만 별로 크게 신경쓰지 않을 지훈의 성격도 잘 알고 있고, 무엇보다….
"여보세요."
기다렸던 연락이니까.
툴툴대듯 전화를 받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야? 이제 막 끝난 듯 주변이 시끄러웠다. 나 아직 교실. 인원의 절반정도가 빠져나간 교실을 둘러보며 순영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사실은 목소리 들은 것만으로도 심장이 뛰면서.
-우산 없다고?
"응. 못 가져왔어."
-내가 챙기라고 아침에 카톡 했잖아.
혼내는 듯한 어투에 순영이 눈을 굴렸다. 아니, 그게 아니고. 보긴 봤는데 학교와서 봤지 뭐야. 변명하듯이 따라붙는 말에 지훈이 작게 웃었다. 하여튼 권순영.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목소리에 담긴 애정을 알아챈 순영의 입꼬리가 저도모르게 올라갔다. 근데 전화기 상태가 안 좋은가? 통화감이 왜이렇게 안좋지.
-복도로 나와. 집에 가자.
**
대다수의 학생이 하교했는지 학교가 조용했다. 그칠 기미가 없는 비를 바라보던 순영은 시선을 돌려 접힌 우산을 펴는 지훈을 바라봤다. 사귀기 전에도, 사귀기 시작 한 후에도 같이 등하교 한 게 한두번도 아닌데 왜 바보같이 긴장이 되는거지. 떨리는 심장탓에 손도 떨리는 느낌이 들어 순영은 가방끈을 꽉 쥐었다.
팡! 하는 소리와 함께 우산이 펴지고 우산을 쥔 지훈의 손이 순영의 눈 앞으로 다가왔다. 함께 우산을 쓴 채로 한발자국 내딛자 코팅된 천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는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는 것 같아. 가방끈을 쥔 순영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사귀기로 한 후로 이렇게 가까이 있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함께하는 하교길이 한두번도 아닌데 왜이렇게 떨리나 싶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서로 적당한 간격을 유지했기에 떨림이 덜했던 것 이었다. 귓가를 어지럽히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순영은 비가오는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바보같이 긴장했다는 걸 들키기는 싫었다. 집을 향해 걷고있지만 정신은 온통 다른 데에 가있었다. 나란히 걷는 지훈이와 나. 함께 쓰는 우산. 맞닿은 어깨. 살짝 스치는 팔의 촉감.
"아!"
다른 생각을 하며 걷다 발이 꼬여 앞으로 넘어질 뻔 한 순영의 팔을 지훈이 잡아챘다. 갑작스레 가까워진 얼굴에 당황한 순영의 눈이 크게 떠졌다. 반사적으로 순영의 팔을 잡았지만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 당황한 건 지훈도 마찬가지였다. 어, 너무 가까운데. 순영이 눈을 깜빡이며 생각했다. 얼굴이 조금씩 달아오르는 듯 화끈거렸다. 기분탓인지 지훈의 얼굴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아닌가? 진짜 가까워지고 있는건가? 순영은 저도 모르게 눈을 내려떴다. 코 끝에 흙냄새와 물비린내, 그 사이로 지훈이 특유의 체향이 섞여들어왔다. 쿵쾅쿵쾅. 심장이 더 크게 뛰었다. 빗소리로 가리기엔 심장뛰는 소리가 너무 크게 울렸다. 아, 순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지훈은 우산을 잡지 않은 손으로 순영의 뺨을 감싸쥐었다. 자신의 얼굴만큼이나 뜨거운 손의 온기에 순영이 움찔거렸다. 지훈의 숨소리가 더 가까이 들려왔고,
…입술이 닿았다.
순영의 귀에는 더이상 빗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지훈과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만 들렸다. 우산이 모로 기울어졌는지 지훈의 등과 순영의 어깨가 젖어들어갔다. 한동안 순영의 입술에 머물러있던 지훈의 입술이 떨어지고 눈이 마주쳤다. 서로를 향한 애정이 담겨있는 눈빛이었다. 아직까지 순영의 볼에 머물러있는 손으로 뺨을 쓸어내리던 지훈이 쪽, 하고 다시 한 번 입맞췄다. 아. 순영이 얼빠진 소리를 내자 지훈이 웃었다.
"가자."
"..응."
다시금 맞닿은 어깨가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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