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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자마자 보이는 사진에 승철의 미간이 얕게 찌푸려졌다. 입구 앞에 보란듯이 세워져있는 저 액자들을 당장이라도 쓰레기통에 쑤셔넣고싶은 마음에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이마를 감싸듯 엄지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누른 승철의 발걸음이 테이블 앞으로 향했다.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함께 놓여있는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손을 잡고 있는 모습, 나란히 서있는 모습, 마주보며 웃는 모습. 머리를 틀어올린 채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사진은 누가봐도 아름다웠다. 오월의 신부라 이건가. 액자의 유리를 손톱으로 톡톡, 건드는 승철이 비꼬듯 중얼거렸다.
한참이나 사진을 들여다보던 승철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대기실 앞으로 향하며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식장에 도착하기 전, 답답한 기분이 들어 느슨하게 풀어놨던 넥타이를 적당하게 조이고 빳빳하게 다려진 자켓의 깃을 매만졌다. 대기실 안으로 들어서자 지인들에게 둘러싸인채 이야기를 나누고있는 오늘의 주인공이 눈에 들어왔다. 화장으로 가렸지만 얼굴이 조금 까칠해진게 멀리서도 보였다.
"최승철, 너도 왔냐?"
"어. 오랜만이다."
대기실 입구에 서 있는 자신을 알아본 대학 동기가 말을 걸어왔다. 짜식,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 여전히 잘생겼네. 여자친구는 있냐? 못본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서스럼없이 대화를 트는 동기의 말에 승철은 간단히 대답하거나, 웃음으로 넘겼다. 그러다 눈이 마주쳤다. 자신이 올 줄 몰랐는지 작게 입을 벌리고서 눈을 깜빡인다. 여전히 사랑스러운 얼굴이었다.
승철은 이 많은 방문객들이 대기실을 나갈 때 까지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까지 나가자 대기실에는 둘만 남게되었다. 닫히는 문을 바라보던 승철이 문을 잠궜다. 달칵. 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대기실안에 마련된 스툴에 걸터앉은 채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샐쭉이 올라간 눈꼬리를 접으며 웃는 모습에 승철의 발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또각, 또각. 대리석 바닥과 구두가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왔어?"
물어보는 말투에 미안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어제 헤어지고 오늘 만난 연인의 말투를 닮은 그것에 승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가 사준 옷 입고왔네. 자신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승철을 올려다보며 순영이 웃었다. 형한테 어울릴 것 같았어. 순영이 몸을 일으키며 속삭이듯 말했다. 그 옷 보자마자 형이 생각났거든. 셔츠 카라를 느리게 훑던 순영의 손이 승철의 볼을 감쌌다. 보고싶었어. 순영의 입술이 제 입술에 살짝 닿았다 떨어졌다.
"비싸게 군 게 누군데?"
승철의 어투가 제법 살벌했음에도 불구하고 순영의 표정은 그대로였다. 형도 나 보고싶었어? 여유롭게 뒷걸음질 치던 순영이 다시 스툴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대답없이 자신만 바라보는 승철의 시선에 순영이 야살스럽게 웃었다. 어느 날엔가, 승철이 섹시하다 말했던 웃음이었다.
"나 오늘 예쁘지?"
말투에 어려있는 색기에 승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걸음을 뗀 승철이 순영의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자신을 올려다보며 도발하듯 웃고있는 모습에 승철의 손이 순영의 머리채를 잡아내렸다. 아! 신음이 터져나오는 입술을 승철의 입술이 막았다. 갑작스런 키스에 당황하긴 커녕 오히려 예상했다는 듯 순영의 팔이 승철의 목에 자연스레 감겼다. 치열을 따라 깊숙히 자리잡은 어금니까지 훑어내린 승철의 혀가 순영의 혀끝을 문질렀다. 키스도중 순영이 가장 잘 느끼는 부분이었다. 흐응. 아니나 다를까 신음을 내뱉는 순영의 눈가가 흥분으로 인해 붉어져있었다.
승철의 입술이 떨어지자 아쉽다는 듯 순영이 쪽, 쪽. 입술을 머금듯 키스했다. 순영의 머리채를 잡고있던 손을 더 아래로 내려 드러난 목을 핥자 젖은 숨을 내뱉은 순영의 눈이 감겼다. 촉, 촉, 곧게 뻗은 목에 입맞추던 승철이 이를세워 약한 살을 물었다. 자국이라도 남기려는 듯 집요하게 목에 흔적을 남기는 승철을 내려보던 순영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 이상은 위험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어깨를 밀어내자 의외로 얌전히 물러난다. 얼얼한 부위를 손으로 어루만지던 순영이 승철의 손가락 끝을 가볍게 핥으며 웃었다. 그 야살스러운 웃음에 승철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권순영 신랑님. 이제 대기하실게요."
"네!"
가볍게 문을 두드리며 들려오는 목소리에 순영이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잡고있는 승철의 손을 자신의 엉덩이로 이끌더니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신혼여행 다녀와서 마저 해 줘."
그렇게 말하며 승철의 귓볼을 살짝 깨물더니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여우같은 권순영. 화끈거리는 귓볼을 문지르던 승철이 닫힌 문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피식웃었다. 방금 전 까지만해도 순영이 앉아있던 스툴에 걸터앉은 승철은 눈을 감았다. 결혼행진곡이 아득하게 들려왔다. 내 타액으로 젖은 입술을 하고, 내가 남긴 키스마크를 달고, 턱시도를 입고 다른여자와 결혼하는 주제에 여우같게 신혼여행 갔다와서 마저 해달라하는 권순영. 그 외에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저를 향한 마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대기실을 나서는 승철의 발걸음이 아까보단 가벼웠다. 결혼식이 시작된 탓에 식장 입구에 있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테이블 위에 예쁘게 셋팅된 액자들을 보던 승철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손을 뺐다. 가볍게 밀어내자 테이블이 허무하게 쓰러져버린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흩어지는 액자들을 바라보다 한걸음 내딛었다. 콰직. 자신의 발에 액자 유리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지만 걸음을 옮기는 승철의 머릿속엔 순영의 신혼여행 출국시간만이 가득했다. 아마, 그 곳에서 마주친다면 꽤 재밌는 상황이 벌어질 게 분명했다. 잊을 수 없는. 승철의 입가에 질나쁜 미소가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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