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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에 비친 모습이 제가 보기에도 퍽 어색했다. 목을 옥죄어오는 느낌에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지만 답답한건 마찬가지였다. 머리 색 때문에 그런가? 확실히 단정한 교복과는 거리가 멀어보이긴 했다. 탈색된 머리를 매만지던 순영은 염색을 할까 고민했지만 굳이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다. 19살도 아니고. 고3이라는 타이틀을 달고있긴 하지만 엄연한 성인이었다. 문제가 된다면, 그건 나중에 생각해도 될 일이었다. 






"학년이랑 반, 이름대세요."



1년만에 온 학교는 향수를 안겨준다기 보다는 어색한 느낌이 더 컸다. 눈에 익은 교정을 둘러보며 걸어가던 순영의 발걸음이 멈췄다. 학년, 반, 이름. 딱 한마디를 하고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눈빛에 의문이 들었다. 뭐 어쩌라고? 불퉁한 표정을 짓고있는 순영을 훑어본 학생이 말을 이어갔다.



"명찰이랑 넥타이 미착용으로 2점 감점, 머리 색은…."  



문제점을 하나씩 지적하는 모습에 순영은 못마땅한 눈빛을 했다. 당장이라도 욕을 쏟아낼 것 같았지만 입술만 씰룩댈 뿐이었다. 재수없어. 속으로 생각하던 순영은 교칙에 대해 읊고있는 학생의 가슴팍에 달려있는 명찰을 바라봤다.



"저보단 선생님한테 맡기는게 낫겠네요."


 
그게 부승관과의 첫 만남이었다. 



**



그 이후로도 순영이 승관과 부딪히는 일은 잦았다. 매일 아침은 물론이고 같은반인 탓에 틈만나면 잔소리를 쏟아냈다. 형, 명찰 하고다니라고 몇번이나 말해요. 형, 또 넥타이 안했죠? 조끼는 어디다 팔아먹었어요? 형, 피어싱도 안된다고요. 형. 검정색으로 염색은 언제할꺼예요? 형, 형, 형! 기억을 되짚던 순영은 진저리를 쳤다. 학교에서 유일하게 승관의 잔소리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은 옥상이었다. 그 잔소리를 오늘은 도저히 들을 여유가 없어 옥상으로 올라온 순영은 품에서 담배를 꺼내물었다. 아랫층의 소음이 아득하게 들려오는 것을 느끼며 여유를 즐겼다. 





"형 담배피워요?"



교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은 순영의 몸이 움찔거렸다. 승관의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눈을 굴리며 어물쩡한 대답을 내뱉었다. 아…,니…? 미심쩍은 대답에 승관의 의혹이 짙어졌다.



"담배냄새가 살짝 나는 것 같은데…."
"아닌데."



저도모르게 살짝 떨리는 목소리가 나와 침을 삼키며 목을 가다듬었다. 어떻게 아는거야? 분명 비누로 손도 씻었고 핸드크림도 발랐고, 탈취제도 뿌렸는데! 다른애들도 아무도 모르던ㄷ…. 누가봐도 굳은 모습을 하고있던 순영의 마이 안쪽으로 승관이 손을 뻗었다. 갑작스럽게 가까워진 얼굴에 순영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뭐, 뭐야?! 가슴께에 손을 얹은 순영은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그, 그렇게 갑자기 다가오면 놀라잖아!"
"레종?"



헉. 이번엔 다른의미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승관의 손에 들린 하얀색갑을 바라보던 순영은 저도모르게 허리를 곧추세웠다. 아, 이건 발뺌도 못하잖아. 저도모르게 승관의 반응을 살피던 순영이 입술을 깨물었다. 담배를 한참이나 내려다보던 승관이 입을 열었다.



"형이 미성년자가 아니라 제가 이래라 저래라 할 입장은 못되지만."



순영의 머릿속에 지금까지 들어왔던 승관의 잔소리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담배는 안피우는게 좋죠."



담배를 꺼낸 승관이 한까치씩 반으로 잘랐다. 담배, 피우지 마요. 형. 웃으며 말하는 모습에 순영은 저도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 했다.




**

 


칙, 칙. 라이터의 플린터휠이 부딪히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불꽃이 피어나지 않는 라이터를 멍하니 바라보던 순영은 점점 가까워지는 인기척을 애써 무시했다. 자신이 온걸 알아차렸음에도 불구하고 손에 쥔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며 딴청피우는 모습을 바라보던 승관은 순영의 앞에 주저앉았다.


"담배 피웠어요?"


어떻게 대답할까. 순영은 잠시 고민했다. 담배를 필 목적으로 옥상에 올라온 건 맞지만 막상 담배를 꺼내려니 땡기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순영의 침묵을 어떻게 해석한건지 승관이 짧게 한숨쉬었다. 제가 담배 피지 말라고 했잖아요. 형이 성인이라고 하더라도 여긴 고등학교라고요. 승관의 잔소리를 흘려듣던 순영이 익숙한 손길로 담배를 빼내자 옆에서 들려오던 말소리가 거짓말처럼 멈췄다. 


승관의 눈을 바라보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내내 손에 쥐고있던 라이터의 플린터휠을 돌리자 불꽃이 피어났다. 순영은 눈을 가늘게 뜨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볼우물이 패일만큼 깊게 빨아들인 뒤 숨을 내뱉었다. 흩어지는 담배연기 사이로 여전히 승관의 눈을 바라보며 순영은 눈을 접으며 웃었다. 무엇보다, 네가 없잖아. 부승관.


무던한 눈으로 순영의 행동을 지켜보던 승관이 실소를 내뱉었다. 당황할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승관의 반응에 당황한 건 순영이었다. 눈을 크게 뜬 채로 자신을 바라보는 순영에게로 상체를 기울인 승관이 손에 들린 담배를 빼 바닥에 짓이겼다. 승관의 손에서 힘없이 불씨를 잃어가는 담배를 바라본 순영이 다시 승관에게 시선을 돌렸다.



"야, 너…!"



한모금밖에 안 빨았는데! 순영의 외침은 완벽한 문장이되어 나오지 못했다. 이게, 지금. 갑작스런 승관의 행동에 상황판단이 되지 않았다. 자신의 입술에 맞닿아있는 승관의…. 바로 앞에서 보이는 얼굴에 순영이 눈만 깜빡이자 승관이 손을 들어 눈커풀을 내렸다. 그와 동시에 맞닿아있던 입술의 맞물림이 조금 더 깊어졌다. 치열을 훑는 혀의 움직임이 야하게 느껴졌다.  깊숙히 자리잡은 어금니까지 훑어내린 승관이 순영의 혀를 얽기 시작했다. 혀 끝으로 느리게 문지르다 깊게 들어오는 움직임에 순영은 저도모르게 몸을 떨었다.



한참이나 맞물려있던 입술이 느리게 떨어졌다. 얼굴을 붉힌채로 가쁜 숨을 내쉬는 저와 달리 승관은 비교적 여유로워 보였다. 타액으로 젖어있는 순영의 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문지르듯 닦아준 승관이 피식웃었다. 



"형, 존나 꼴려요."



순영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춘 승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담배는 피지마요. 키스할 때 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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