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에 비친 모습이 제가 보기에도 퍽 어색했다. 목을 옥죄어오는 느낌에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지만 답답한건 마찬가지였다. 머리 색 때문에 그런가? 확실히 단정한 교복과는 거리가 멀어보이긴 했다. 탈색된 머리를 매만지던 순영은 염색을 할까 고민했지만 굳이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다. 19살도 아니고. 고3이라는 타이틀을 달고있긴 하지만 엄연한 성인이었다. 문제가 된다면, 그건 나중에 생각해도 될 일이었다. "학년이랑 반, 이름대세요." 1년만에 온 학교는 향수를 안겨준다기 보다는 어색한 느낌이 더 컸다. 눈에 익은 교정을 둘러보며 걸어가던 순영의 발걸음이 멈췄다. 학년, 반, 이름. 딱 한마디를 하고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눈빛에 의문이 들었다. 뭐 어쩌라고? 불퉁한 표정을 짓고있는 순영을 훑어본 학생이 말..
“순영이가 내 친구인지 니 친구인지 모르겠다.” 방에서 나온 누나가 나란히 앉아 콘솔게임을 하고 있는 나와 순영이형을 보며 말했다. 몰랐어? 나 석민이 친군데. 순영이형이 웃으며 말하자 빈정이 상했는지 누나가 볼을 씰룩거린다. 와 누나 그표정 짓지마 진짜 못생겼다.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누나가 주먹으로 내 등을 때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기분이 상한 모양인지 주먹이 꽤 아프다. 아파! 몸을 비틀며 외쳤지만 누나는 분이 풀릴 때 까지 때리려고 작정을 한 모양이었다. "내 친구 그만 때려!!!" "뭐어?" 순영이형이 쥐고있던 조이패드를 던지며 다급하게 외쳤다. 순영이형의 말에 누나는 기가 찬 모양인지 형도 한 대 때렸다. 어우. 야 넌 주먹이 왜이렇게 매워? 누나에게 맞은 어깨를 어루만지며 형이 툴툴댔다.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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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간, 민규는 한손에 든 피자상자를 흔들며 사람들이 없어 비교적 한산해진 거리를 빠르게 걸었다. 귀 끝이 빨개질 만큼 바람이 찬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순영의 집으로 향하는 민규에게서 추운 기색이 느껴지지 않는다. 순영과 메시지를 주고받던 도중 피자가 먹고 싶다는 한마디에 민규는 오늘 야자가 없는 날이니 수업 끝나면 자기가 사가겠다고 냉큼 대답했다. 물론 피자가 먹고싶었다기 보다는 순영의 얼굴을 한 번 이라도 더 볼 핑계거리에 불과했고. 순영의 집 앞에 도착한 민규는 익숙하게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040615. 원래는 저 비밀번호가 아니었지만 민규가 바득바득 우겨 비밀번호를 바꾸게 했다. 저 비밀번호를 누를 때 마다 왠지모르게 흐뭇하단 말이지. 정작 집주인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모양이지만. 도어..